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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독립, 진검승부의 시기가 다가온다 - 하헌필 극한소재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등록일 :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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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규제 사태가 2년이 지났다. 두 해가 지난 현재 일본 수출규제 사태는 오히려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 소부장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 감소세가 3배 가속화했고, 관련 국내 기업의 매출이 2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은 국면 전환은 정부와 민간부문이 총력 대응을 통해 발 빠르게 위기에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기업은 수출규제 품목에 대해 필요한 소재 공급망을 다양화하는 노력과 함께 그동안 개방하지 않았던 생산라인을 소부장 공급 기업에 개방해 신규 기술을 검증하는 노력과 함께 과감히 신기술을 최종 제품에 적용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산업구조는 거대한 가치사슬로 묶여 있다. 소재, 부품, 완제품 제조와 유통, 판매, 서비스에 이르는 비즈니스의 전 과정이 다수의 국가와 지역에 걸쳐 분업화돼 있다. 한·중·일 3개국 역시 오랜 시간 다듬어온 삼각 분업체제를 통해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사슬을 형성해왔다. 일본이 기초 소재를 공급하고 한국이 중간재와 부품으로 가공해 수출하면 중국이 완제품을 조립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이 공들여 다져온 공동번영체제에까지 위협을 가하지는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2019년 모두의 상식을 깬 일본의 선택을 통해 우리는 국제적인 분업화 추세에 기대어 관심과 투자를 게을리했던 기술이 언제든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일본 수출규제 사태가 촉발한 동북아 분업체계의 분열과 점점 더 격해지는 미·중 패권경쟁이 상징하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자원과 기술의 무기화를 통한 비이성적인 공격은 언제든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소재 분야의 기술개발은 오랜 시간의 연구와 노하우 그리고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미래에 예상되는 기술전쟁과 무기화가 가능한 핵심 기술들을 면밀히 파악해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KIST의 신촉매 개발 사례는 좋은 예시가 될 듯하다. KIST는 자체적인 미래 전망을 바탕으로 2010년께부터 이미 한발 앞서 전 지구적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연구를 시작했다. '질소산화물 분해촉매'도 그중 하나였다. 연구개발이 완성될 무렵 국제해사기구(IMO)는 심각해지는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2016년부터 대형선박엔진의 질소산화물 배출규제를 3단계(Tier Ⅲ) 기준으로 강화한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이러한 결정에 발 빠르게 대응을 시작한 것은 덴마크와 일본의 엔진설계 및 제조회사였다. 이들이 먼저 강화된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질소산화물 저감장치 개발에 성공한다면 국내 산업계는 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은 질소산화물 저감장치의 핵심인 고내구성 저온촉매 기술 개발 실패로 최종적으로 저감장치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후발주자였지만 KIST가 보유한 저온촉매 기술을 적용한 국내기업이 최종 승자가 되었다.
소재 독립을 향한 진검승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보유한 기술들을 총동원해 대처할 수 있었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해 온 씨앗 기술이 없으면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응은 어렵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의 기술전쟁에 대비한 전략이 없으면 이번 사태로 인해 겪은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출처: 매일경제(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9/916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