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창의포럼 박경철 원장의 창의의 조건(2013.10.16)
- 등록일 :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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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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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포럼 연사로 KIST를 방문한 적이 있는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그의 이름이 기억 속에서 아련해질 무렵 우리나라 지성인들이 좋아하는 고전 중 가장 많은 추천 받은 작품으로 다시 조르바를 접했다.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고 나는 자유의 표상인 조르바에 빠져들고 말았다. 박경철 원장을 문명의 배꼽 그리스로 인도한 것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했다. 의대생 시절 우연하게 그 소설을 읽으며 심장이 타오르는 듯한 일종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창조와 휴머니즘
박경철 원장은 창조는 하늘 아래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 정의하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은 육감(경험과 추리로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이용하여 변조, 개조, 제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성과 경험이라는 보편적인 컨센서스에 바탕을 두고 사유를 하기 때문에 신의 영역인 창조적 영감을 획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박경철 원장은 인간의 창조적 행위를 할 때는 영감이 필요하며, 그 영감은 광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성과 경험, 육감을 바탕으로 한 사유로는 절대 영감을 얻을 수 없고 그 틀을 넘어서는 광기가 있어야 영감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광기는 신에 의해 주어진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인 창조에 접근하려는 행위는 신을 숭배하면서도 신에 대항해서 맞서려는 자유의지 즉 휴머니즘이라 했다.
철학적 광기, 종교적 광기
박경철 원장은 광기는 영어로 Crazy와 Madness가 표현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광기는 Madness로 그냥 미친 것이 아니라 경험과 이성의 합리적인 판단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하며 광기의 종류에는 철학적 광기, 종교적 광기, 예술적 광기가 있다고 했다. 철학적 광기는 생각으로 미치는 것으로 사유의 한계에 저항하며 그 벽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이라 했다. 수십 년간 없음(無)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사유하는 스님들의 예를 들면서 그런 철학적 광기를 통해 생각의 경계를 넘어서면 이른바 ‘깨쳤다’에 이른다고 했다. 한 영역에서 사유에 영역을 확장하면 다른 영역의 이치까지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깨침의 철학적 광기는 타인과 공유가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종교적 광기는 믿음의 광기이다. 믿음의 광기는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이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하는 것이라 했다. 순교자들이 고문을 견디며 목숨을 내놓는 것처럼 믿음의 힘은 어떤 시련과 실패가 있어도 견디는 힘이다.
예술적 광기
박경철 원장은 예술적 광기에서 가장 많은 강연 시간을 할애했다. 예술가의 광기는 타고 나는 것이라 했다. 예술적 광기가 없는 사람이 학습을 통해 기교만 배워서 예술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했다. 꿈은 인간이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인데, 예술가는 그 자유인 꿈을 현실화 시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성과 경험의 포로인 일반인에게는 현실과 꿈이 정확히 구분되지만 예술적 광기를 지닌 사람은 꿈도 현실일 수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도 모든 갈등이 치유되는 평화로운 낙원세계를 꿈에서 경험한 후 작곡한 작품이라 했다. 예술가의 광기는 현실세계와 영감의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예술적 광기의 결과물인 시와, 음악, 미술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영감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박경철 원장은 예술을 늘 가까이 하라는 말과 함께 영감을 체득할 수 있는 감상법을 제시했다. 쇼핑하듯 스쳐가는 미술관 투어가 아니라 잭슨 폴락의 낙서처럼 보이는 작품을 2시간 이상 몰입하면서 감상할 때 작가의 예술적 광기를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절대자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인 휴머니즘도 결국 인간 본성인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다. 박경철 원장이 말하는 광기도 이성과 경험이라는 지식인의 저울로부터 탈피하려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단풍이 짙어지는 가을에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야겠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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