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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범선
- 등록일 : 2023-05-26
- 조회수 :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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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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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KIST 원장
아이디어와 기술이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좌절과 위기의 기간을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death valley)라고 일컫는다. 벤처기업이 아이디어의 사업화 단계에서 맞이하는 위기, 또는 어떤 기술이 상용화에 실패하여 결국 사장(死藏)되는 상황을 모두 나타낸다. 결국 기술과 기업은 한배를 탄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 이맘때 대기업 한 곳에서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연구소의 기술을 탄소 중립에 대비하는 핵심 기술로 함께 발전시켜보자는 제안이었다. 어디에 내놔도 자신 있는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상용화의 길은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스케일업 과정에서 응용·개발연구의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것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든든한 파트너가 스스로 찾아온 셈이니 더없이 반가운 마음이었다. 원래 좋은 기회를 포착하면 망설이지 않는 성격이라 양측의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서둘러 겸직 발령을 냈다.
기술은 연구자가 잘 알아도,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감각은 수요자인 기업이 더 기민하고 정확하다. 이 때문에 기업과 연구소가 더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중소기업의 연구인력이 우리 연구소에 상주하는 공동연구실을 설치하는 일도 시작했다.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기업이 연구소의 기술을 적용하여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연구하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이름부터 서로를 잇는 실험실, 즉 '링킹랩(Linking Lab)'이라고 지었는데 공정 개발부터 제품 출시까지 전 주기에 걸친 협력을 목표로 삼았다.
연구자가 직접 첨단기술을 토대로 창업에 나서는 것도 혁신기업 창출을 위한 좋은 방안이다. 원천기술을 토대로 한 '기술 창업'은 유통·서비스업 중심의 전통적 창업에 비해 파급효과가 커 '혁신적 창업'으로 분류된다. 관건은 어떻게 기술 창업을 늘리고 그 생존율을 높일 것인가이다. 먼저 연구자의 창업 기업 겸직과 휴직 제도를 활성화하여 창업에 대한 용기를 북돋는 등 시스템이 보완되어야 한다. 또한 연구자들이 서툴 수밖에 없는 투자 유치와 행정 사무는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털 등 창업 생태계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특히 연구기관의 원천기술이 민간 투자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추후 기업 공개와 M&A 전략까지 수립해줄 수 있는 기술지주회사가 생긴다면 금상첨화일 터다.
대기업의 신성장동력 개척, 중소·중견기업과의 공동 기술 개발, 기술 기반 창업 등 우리 산업 전반에서 기술 사업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술 사업화에서 시작된 혁신의 미풍이 우리 경제를 든든하게 받쳐줄 순풍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우리 기업들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 넓은 바다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연구소와 대학의 실험실들이 팽팽한 돛이 되어줄 것이다.
출처 : 매일경제(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