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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36주년 기념식/리셉션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후르깔로(Volodymyr V. Furkalo)우크라이나 대사, 시 드니 바파나 쿠베카(Sydney Bafana Kubheka)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 박호 군 KIST원장,최형섭 박사, 채영복 과학기술부장관, 임 관 삼성종합기술원 장 , 박원훈 前KIST원장, 몬데르 제마일(Mondher Jemail)튀니지대사. ---------------------------------------------------------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朴虎君)은 8일 오전 10시 원내 존슨강당 에서 채영복 과학기술부장관을 비롯하여 16개국 주한외국공관장과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36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창업생태계 운하가 필요한 이유 - KIST 윤석진 원장
유럽~인도양 항로가 15세기로 회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발 네덜란드행 화물선이 좌초하며 수에즈 운하를 막은 것이다. 일부 선박들은 9,000㎞ 넘게 돌아가야 하는 희망봉 항로로 향했다. 재개통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이 기간 세계 해운 산업의 피해 규모는 하루 약 10조 원이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선박·항공·철도를 모두 합친 국제 교역량의 12%를 책임지며 세계 경제의 대동맥으로 불려 온 수에즈 운하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21세기 세계 산업 구조는 거대한 가치 사슬로 묶여 있다. 상품 제조와 유통·판매·서비스의 모든 과정이 국제적으로 분업화됐다. 수에즈 운하로 중동과 유럽·아시아를 오가는 수많은 원자재·중간재·완제품들이 이 거대한 글로벌 밸류 체인의 생생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대규모 운하는 물류 비용 최소화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까지 제공해 왔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하나로 만든 파나마 운하도 마찬가지다. 기술과 시장을 직접 연결하는 연구실 창업은 시간과 비용의 단축으로 큰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운하와 닮은꼴이다. 과거 연구실 창업이 활발했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사이 많은 이들이 창업을 꿈꿨다. KIST 연구자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한때 창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연구와 기업 경영의 역량 사이에는 극복하기 힘든 간극이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늘면서 모험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는 우리 사회와 경제의 역동성마저 위축시켰다. 지난 20년간 우리 정부는 창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와 궤를 같이하는 KIST의 여러 지원 제도를 운하의 형태와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물길을 터주고 자체 동력으로 통과시키는 ‘수에즈형’, 또 하나는 갑문을 이용해 선박을 들어 올린 뒤 예인 기관차들이 끌어 주는 ‘파나마형’이다. 창업이 성공하려면 죽음의 계곡은 물론, 본격적인 시장 경쟁 단계인 다윈의 바다도 건너야 한다. 당연히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다. 이런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서도록 하는 물길이 수에즈형 지원이다. 두려움 없이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겸직과 휴직을 허용하고, 연구가 천직인 이들이 경력 단절 걱정 없이 창업 의지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계속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파나마형 지원은 모든 것이 부족한 창업 초기, 상용화를 위한 추가 기술 개발과 시제품 제작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자본이 부족한 창업 기업이 기술료로 지분을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위험한 해협을 건널 때 운항을 돕는 도선사처럼 연구와 경영의 차이를 보완해 줄 기업가(Entrepreneur)와의 공동 창업도 성공률을 높였다. 지난해 KIST의 연구실 창업은 7개로 예년보다 대폭 늘었다. 여러 가지 창업 지원책들이 효과를 낸 듯하다. 국내 일반 창업의 5년 생존율은 30%. 하지만 기술 창업은 두 배인 60%가 넘는다. 평균 매출액 역시 일반 창업의 8배, 일자리 창출도 7배 이상이다. 실로 오랜만에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 혁신 기술 창업의 기운을 보다 혁명적인 변화로 이끌 수 있는 창업 생태계 운하 건설이 절실한 때다. 출처: 서울경제(https://www.sedaily.com/NewsView/22KZASV8U7)
창의 포럼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12.7)
창의 포럼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12.7) 국민배우 안성기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라는 언론 인터뷰에서 악기를 하나라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늦가을 밤 축제 때 연습이 부족하다며 겸손해 하며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던 연구원들을 보았다. 국민배우 안성기처럼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에겐 연주자인 그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가야금과 평생 연애하며 살았다는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게 가야금은 어떤 의미일까? 괴짜와 가야금 8월 창의포럼 특강 강사였던 김훈 작가처럼 황병기 감독의 음악인생 출발도 피난도시 부산이었다. 황병기 감독은 자신의 학창시절을 괴짜로 표현했다. 수업시간에는 도발적 질문을 던져 논쟁을 유발시켰고, 퇴학을 당할 뻔도 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주 골치 덩어리 학생이었다고 황병기 감독은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가야금을 배우지 않겠냐’는 반장의 권유에 이끌려 우연히 찾아간 강습소의 가야금이 황병기 감독의 인생을 바꾸었다. 무슨 연유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야금을 배워야 한다는 다짐을 한 순간 아버님의 강력한 반대도 그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중학생 황병기는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그의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실력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이 있었다는 나름의 논리로 아버님의 반대를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즐거움과 가야금 황병기 감독은 중학시절 가야금을 연주하면서부터 하루도 연주를 쉰 적이 없다고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매일 가야금 연주를 한다고 했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어떤 직장을 다니든 연애를 계속하는 것처럼 자신도 매일 가야금과 연애하고 있다고 했다. 연애 이야기가 부족했던지 황병기 감독은 논어로 자신과 가야금의 관계를 증명하려 했다. 가야금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정말 기쁜 일이고(學而時習之 不亦悅乎), 황병기 감독에게 가야금은 좋아하는 것 이상의 즐기는 것이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 없이 즐거워서 계속 연마한 가야금이 어느새 황병기 감독의 직업이 되었다. 베토벤이 악성으로 추앙받는 것도 그의 사후 유럽시민계급의 성장 때문이었던 것처럼 자신이 국악과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대한민국의 성장 덕택이라며 자신을 낮춘다. 가야금과 숙명 황병기 감독이 작곡한 가야금 연주곡이 강의장인 컨벤션홀에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곡을 단 가곡 ‘국화 옆에서’, 박두진의 시 ‘청산도’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 숲(뻐꾸기, 비),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에 곡을 붙인 ‘달하 노피곰’. 자신이 제작한 곡임에도 음반이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고액의 관세를 지급할 뻔 했으나 우체국장의 배려(?)로(신품이 아닌 중고품으로 처리) 관세금액이 줄었다는 이야기처럼 황병기 감독이 곡 이면에 숨겨진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강연 말미에 황병기 감독은 가야금과 본인의 관계를 숙명이라고 했다. 가야금을 통해서 결혼을 하고, 가야금이 직업이 되고, 이화여대 교수 은퇴 뒤에도 가야금을 통해 다시 4번의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고 했다. 국립국악원 60년 역사가 본인의 가야금 인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황병기 감독, 60년을 매일 함께한 가야금을 숙명이라는 단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똑똑한 사람은 무섭지 않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수학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버드대학 수학과 교수가 한 말이란다. 가야금과 숙명적 연애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원로예술가의 강연이 ‘재능만 믿고 배움을 게을리 한 적이 없는지, 업(業)으로만 생각하고 재미와 열정을 빼놓은 것은 아닌지’ 바쁘다는 이유로 챙기지 못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창의기술 아이디어 경진대회 개최
우리원에 재직중인 Post-Doc., 학생연구원(연수생 포함) 및 위촉연구원의 연구의욕을 고취시키고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장려함으로써 연구몰입도를 제고하기 위하여 5월 6일부터 22일까지 ‘창의기술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진행하였으며, 수상작에 대한 포상이 5월 19일(화) 본관 로비에서 개최되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전시물 또는 포스터를 접수하여 발표회를 진행하였으며, 해당 연구분야별로 독창적이고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들이 출품되어 경진대회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포상으로는 최우수상 1팀에게 표창장과 상금 3백만원, 우수상 2팀에게 표창장과 상금 2백만원이 각각 수여되었으며, 장려상 2팀에게도 표창장과 상금 1백만원이 전달되었다. 또한 예선탈락자에게는 개인당 5만원의 상품권이 수여되었으며, 수상자를 제외한 발표자 전원에게 개인당 10만원권 문화상품권이 수여되었다. 순위 본부 성명 출품작 아이디어 제목 상금 1 (최우수상) 에너지 환경 이희진 박은석 전시품 포스터 초소형 실내공기정화장치 300만원 2 (우수상) 나노 과학 박윤호 포스터 자성팁을 이용한 전류 분포 측정 200만원 에너지 환경 김근호 포스터 개선된 촉매층(Catalyst layer)의 제조 공정을 위한 dual-spray gun system 200만원 3 (장려상) 지능 시스템 박주경 배문화 포스터 Mixed object를 이용한 TUI(Tangible User Interaction) 기술 100만원 강릉 분원 나예림 외 4인 포스터 클로렐라로부터 기능성 추출물 생산을 위한 가압용매추출공정 개발 100만원
창의포럼 개최(5.18)
Vertical Limit와 실미도 영화 ‘Vertical Limit’와 ‘실미도’를 보고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이 적정한지를 토론하게 했다. 그리고 그 토론의 결과를 청중들에게 발표하게 했다. 특강식 강의에 익숙했던 우리에겐 매우 신선한 시도였다. 수십초 안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리더의 덕목 김형철 교수는 리더의 덕목을 강조했다. 리더란 지위나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직책도 아니란다. 지위나 직책에 상관없이 자신 만이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리더라고 했다. 리더는 자기희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리더는 부정적 선글라스를 벗기는 사람이다. 리더는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일을 시키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라 일과 책임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리더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다. 모든 리더의 덕목이 모두 중요하지만 철학자 김형철이 가장 강조한 리더의 덕목은 자기희생이다. 리더가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면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것이다. 철학의 거장 헤겔, 니체 그리고 장자로부터 배우는 리더십 시너지나 WIN-WIN 잘되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은 다른 사람이 밖에서 열어줄 수 없고 오로지 나만이 안에서 밖으로 열 수 있다고 독일 철학자 헤겔이 말했다. 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진실한 소통도 없는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발전의 3단계를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에 비유했다. 낙타는 복종심과 인내심은 강하지만 소심하고 사자는 자유정신이 뛰어나 권리를 쟁취하는 데는 용맹하지만 팀워크를 이루는데 실패한다. 마지막 단계인 어린이는 쉽게 잊어버리고 끝없이 즐거움을 추구한다. 리더도 어린아이처럼 과거의 성공과 실패도 잊어버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즐거운 것을 선택해서 집중하고 몰입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김형철 교수는 강조한다. 김형철 교수는 3M의 포스트잇 사례 등 여러 사례를 인용하여 장자의 無用之用을 설명했다. 즉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생각과 편견을 조금만 바꾸면 크게 쓰이는 대박상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무용지용이 가능한 토대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실패사례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하며 이런 정신이 있는 기업이 일류기업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이유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배움을 시작하는 것, 모르는 것을 남들에게 물어보는 것 이 단순한 진리가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로 만들었다. 최고의 목수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목수를 찾아가라고 했다. 김형철 교수는 하루 4시간씩 10년 동안 자신에게 투자하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서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같은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 異種에서 배우라고 했다. 하버드대에서는 전혀 다른 학문의 교수들이 3박 4일동안 합숙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어떤 특강에서 강사가 촌놈을 새롭게 정의했다. 늘 같은 종류의 사람과 밥 먹고 늘 같은 종류의 사람과 술 먹고, 늘 같은 종류의 사람들과 등산하는 사람이 촌놈 이란다. 김형철 교수도 내 전문분야 내 전공이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다른 분야의 책도 섭렵해야 그 배움에 깊이가 더해진다고 했다. 철학은 제3자의 입장, 객관에서 사물을 해석하는 과학이 아니다. 철학은 자신의 내면을 자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학문이다. 객관의 과학으로 둘러싸인 연구자에게 숨겨진 내면, 그 주관 철학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창의포럼 김주영 작가의 상상력의 힘(2014.04.23)
작가들의 경험은 소설의 중요한 소재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읽은 ‘난중일기’가 모티브였고, 박범신의 ‘은교’는 강경의 황금들녘에서 경험한 치명적 아름다움이 주인공 은교로 형상화되었다. 김주영 작가의 창작에너지도 어린시절의 경험이다. 가난의 경험 김주영 작가의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단어는 ‘가난’이다. 먹을 것이 없어 술지게미로 허기를 달랬다가 술 냄새 때문에 선생님께 혼이 났다고 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그가 즐겨 찾은 곳은 수돗가였다. 지독한 굶주림에 어머니께서는 소년 김주영에게에게 ‘절대 뛰지 마라. 엎어지면 못 일어난다.’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수업료는 고사하고 책과 공책을 살 돈도 없어 창호지를 엮어서 노트를 만들었다. 김주영 작가 연배의 아버지 세대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작가의 맛깔스런 비유가 그 시대를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김주영 작가는 그가 겪은 가난, 그로 인한 수치심, 고통, 응어리가 글의 소재가 되고, 창작의 에너지라 했다. 김주영 작가의 글에서 가난과 함께 늘 등장하는 것이 어머니다. 엄마, 엄마, 엄마 이런 연유에서인지 ‘천둥소리’, ‘홍어’, ‘멸치’, ‘잘가요 엄마’ 등 작가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등장한다. 전작들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상상 속의 어머니라면 ‘잘가요 엄마’의 어머니는 김주영 작가의 실제 어머니다. 아버지가 계셨지만 중학교 입학 후에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고, 어머니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가난은 필연이었다. 모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그 재혼이 작가의 어린 가슴에 못을 박았다. 작가의 기억 속에 어머니는 가난, 고통, 슬픔, 회한, 수치였다. 그 아픈 기억은 마흔이 될 때까지 작가와 어머니를 단절시켰다. 어린 시절의 처절했던 고통의 기억이 소설의 소재가 되고,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 후에야 작가에게 어머니는 은혜로운 존재로 다가왔다. 작가는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면서 관계를 복원했다. 마음 속에 고통과 회한, 치명적 경험을 준 어머니를 빼고 작가 김주영과 그의 작품을 논할 수 없다. 책, 유일한 친구 과부집의 가난한 아이인 김주영은 함께 놀 친구가 없었다. 외톨이 김주영에게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청송군 월전리 외톨이 소년 김주영은 책을 사기위해 80리 떨어진 안동까지 걸었다. 80리 비포장길을 책을 읽으며 걷다보면 집에 도착할 때 쯤에는 이미 새 책을 다 읽은 후였다. 대학시절 거지와 같이 생활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김주영 작가는 책만은 놓지 않았다. 가난한 외톨이 소년을 지탱해준 겪이 없는 친구 ‘책’이 그를 작가의 길로 인도한 매개체였을 것이다. 김주영 작가는 미국의 여성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예를 들며 최악의 밑바닥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그녀를 변화시킨 것도 결국 책이었다고 했다. 호기심과 상상력 책이 김주영 작가 밥벌이의 길을 열었다면 상상력은 그의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재료였다. 그는 이념이나 종교에 너무 몰입하면 반쪽 세상만 보게 되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라고 했다. 꿈꾸는 사람과 함께하면 저절로 꿈이 생긴다며 서식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비단잉어 코이의 예를 들었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 그것을 통해 얻은 지혜가 상상력의 원천이라 했다. 또한 모든 상상력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인문학이라며 독서와 영화감상을 권했다. ‘객주’라는 작품을 위해서 전국의 장터라는 장터를 모두 다녔다. ‘화척’이라는 작품을 위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개성을 가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절필선언을 했다. 작품에 적합한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밤새워 국어사전을 뒤졌다. 팔순에 이른 지금도 현장의 생생함을 작품 속에 녹여내기 위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김주영의 상상력은 철저한 현장정신에 있다. 우리는 80대 노작가처럼 치열하게 현장을 누비고 있는가?
창의포럼 김진만PD의 세상의 끝에서 길을 찾다(2013.02.21)
‘접속’이라는 영화를 보고 라디오 PD를 꿈꾼 적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음악 PD는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일반 기업처럼 빡빡한 일정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존의 눈물을 연출한 김진만 PD도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의 매력에 PD라는 직업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호기심과 가슴이 뛰는 것, 그리고 일 창의성에 대해 서술한 거의 모든 책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조언한다. 김진만 PD도 가슴 뛰는 무엇을 찾기 위해 많이 읽고 많이 다녔다고 했다. ‘호기심은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의 문구를 언급하며 창의성의 바탕은 여행, 독서와 같은 간접경험이라고 했다. 고시에 낙방하고, 우연하게 접한 선배 PD들의 특강에서 연출자란 직업에 매력에 이끌려 PD가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좋아서 예능 PD가 되었지만 연출자와 연예인 사이엔 대형기획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과 진정어린 소통, 그들의 속마음을 그대로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소통을 원했던 그가 예능국을 떠나 다시 자리 잡은 곳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교양국이었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하기까지를 그는 좋은 일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아무리 즐겁고 가슴 뛰는 일을 찾았더라도 그것이 업(業)이 되면 재미가 없어진다. 주어진 일, 업을 가슴 뛰는 일로 바꾸는 것은 호기심, 즉 ‘왜’라는 물음을 삽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무엇을, 어떻게 ‘휴먼 다큐 사랑’, ‘MBC 스페셜’을 통해 출연자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다큐멘터리 PD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을 때 김진만 PD에게 ‘아마존의 눈물’을 제작하라는 조직의 업이 배정되었다. 지구 반대편에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에족 사진을 보고 그는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조직에서 지시하는 일이 김진만 PD의 아마존의 눈물처럼 모두 가슴 뛰는 일은 아닐 것이다. 조직이 부과한 업을 가슴 뛰는 일로 바꾸는 것은 ‘왜’라는 자신 만의 기획을 덧붙이면 가능하다고 했다. 십억원 남짓의 제작비로는 수백억을 투자해서 제작한 외국 유수언론사의 아마존 다큐프로를 흉내 낼 수 없었다. 김진만 PD의 생각한 ‘왜’는 남들이 하지 않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 그들과의 진솔한 소통을 기반으로 한 휴먼다큐였다. 그 휴먼다큐가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무한도전’에서 차용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입혔기 때문이다. 원시부족과 같이 먹고, 사냥하고, 놀이를 즐기면서 촬영팀은 그들의 마음을 얻었고, 그것은 곧 주인공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소통의 조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통을 할 수 있을까? 김진만 PD는 소통의 기본은 관심과 배려라고 했다. 장애인 수영선수 세진이를, 악성루머에 휩쓸려 칩거 중인 최민수를 촬영할 때도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끄집어내기 힘들었다고 했다. 좋은 영상이 기다림에서 나오는 것처럼 소통은 다큐멘터리처럼 시간과의 싸움이다. 관심을 가지고 조급하지 않고 겸손하게 듣다보면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소통이 되고 마음을 얻으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주어진다며 아마존의 눈물 촬영 때 원주민 부부가 자신들의 사랑하는 장면을 찍으라고 했던 사연을 소개했다. 아마존과 남극의 힘들고 열악한 조건에서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제작진과의 진솔한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몸이 지쳤을 때 가장 좋은 소통의 도구는 유머라고 했다. 시속 100km 이상의 눈폭풍, 영하 50도가 넘는 혹한을 견디기 위해 남극의 황제펭귄은 허들링을 한다. 체온유지와 알을 지키기 위해 몸을 최대한 밀착시키고, 바깥쪽이 추워 몸이 얼면 안쪽으로 자리를 바꿔주는 행동을 반복한다.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협동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소통의 모습이다. 몸과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는 것을 김진만 PD는 도전과 열정이라 했다. 소통도 몸과 마음이 불편해 질 수 있지만 그것으로 얻는 것이 훨씬 크다. 이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왜 이리 힘든 것인가? 소통의 길은 멀고 험하다. 좌절하지 말자.
창의포럼 김홍희사진작가의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2013.03.20)
김홍희 작가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1966년, 대한민국의 두 번째 도시 부산조차도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 다수였다. 바로 그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과학기술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선각자적인 상상력에 김홍희 작가는 놀랐다고 했다. 작가는 상상력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작가에게 ‘패러다임, 패턴, 인식체계, 틀’이라는 말은 상상력을 저해하는 고정관념과 동일한 의미인 것 같았다. 직업의식 vs 윤리 김홍희 작가는 사진을 크게 광고사진, 저널사진, 예술사진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설명했다.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참여해 전쟁을 피해 강을 건너는 가족의 저널사진을 찍은 일본인 사진작가는 그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퓰리처 상의 상금을 그 가족에게 나누어주고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사진을 찍었다는 비난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선택했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남아공의 사진작가도 사진을 찍기 전에 굶어 죽어가는 소녀를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는 비난에 자살을 했다. 김홍희 작가는 위험에 빠진 개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그들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전쟁을 멈추는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종군기자 입장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우선하는 가치라는 ‘입장의 철학’을 스승으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김홍희 작가 본인은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사람을 먼저 구할 것이라고 했다. 인식 vs 감상 사진은 논리나 이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감성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했다. 호박, 마차, 유리구두라는 단어를 통해 신데렐라를 연상하듯 기존의 지식과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을 한다. 이런 인식체계는 예술사진이나 개인적 영역의 저널리즘 사진을 해석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눈 쌓인 황량한 길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예술사진 한 점을 김홍희 작가가 소개하면서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어떤 이는 ‘외롭다’고, 어떤 이는 ‘희망이 있다’라고 답변했다. 그 예술사진 캡션에는 ‘불빛에게 물었다. 거기가 끝이냐고. 불빛이 답했다. 여기가 시작이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사진을 찍은 작가는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 속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와 연결시켜서 인식하고자 하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철학 vs 예술 김홍희 작가는 과거의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비드상’, ‘천지창조’,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작품을 소개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스킬로 만든 작품들이 과거에는 찬사를 받았지만 현재는 완성도만으로 예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뜨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눈에 보이는 형상 혹은 이미지는 분명 파이프인데 눈으로 읽는 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텍스트이다. ‘이것’이라고 지칭하는 순간 그 범주와 패러다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다. 파이프라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동일한 범주 안에서 인식하기에 다른 해석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관습적으로 보고 읽고 인식하는 체계를 뒤틀어서 새로운 해석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 현대예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비트겐슈타인과 소쉬르 같은 철학자는 기호학에서 이것을 규명하기 위해서 두꺼운 철학 서적을 썼지만 예술가는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의 철학 강의 같았다. 김홍희 작가는 까치 담배를 파는 몽골가게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한 갑씩 매끈하게 포장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이성, 논리, 합리라는 것들이 보고 듣기에는 매끈한 담뱃갑처럼 좋다. 하지만 ‘한 갑’이라는 틀 안에 우리의 인식과 사유체계가 갇히고, 우리의 상상력이 ‘한 갑’이라는 집단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력의 적들에 대한 사주경계가 필요하다.
창의포럼 미술평론가 이주헌(2012.09.19)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알기 위해 미술관련 책도 읽고, 작품과 친해지려고 미술관을 기웃거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미술이다. 어떻게 기성품 변기, 자신의 대변을 넣은 캔(can)이 작품이 되는지 모르겠다.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688만달러에 팔린 ‘오렌지, 레드, 옐로우’(마크 로드코)는 내 눈에는 그냥 3가지 색일 뿐인데 그렇게 고가에 팔릴 정도의 뛰어난 예술작품인지 더더욱 알 수 없다. 미술평론가이자 서울미술관 관장인 이주헌님의 특강을 들으면 이런 의문이 과연 풀릴 수 있을까? 눈의 한계와 미술 이주헌 관장이 우리에게 먼저 보여준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여러 가지 도형이었다. 우리 눈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착시현상의 예를 들면서 눈이라는 인간의 감각기관이 지닌 한계를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각의 한계가 미술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2차원의 평면임에도 잘 그린 그림은 3차원의 공간감, 입체감,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 그림 속에 꽃잎이 하늘거리는 것처럼 느낀다. 실제 만져보면 2차원 평면에 불과하지만 착시현상 때문에 3차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미술은 인간의 시각적 한계가 가져다준 축복이라고 했다. 내가 본 여인은 오른쪽으로 춤을 추며 도는데 반대로 왼쪽으로 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른쪽으로 돈다고 보는 사람은 우뇌가 왼쪽으로 돈다고 보는 사람은 좌뇌가 활성화 되고 있는 상태라고 추정했다. 눈의 착시현상과 논리‧분석의 좌뇌 , 직관‧이미지의 우뇌 2개, 즉 두개의 뇌를 가진 탓에 사람마다 사물을 다르게 본다. 시각에 의존한 예술인 미술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남과 다르게 보고 진정 '나다워 지는 Original‘이 예술에서의 창의성이다.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미술은 사기다 관객이 피카소를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 미술이 뭡니까” 피카소가 답했다. “미술은 돈입니다.” 최근 10년간 세계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로 팔린 작품 10개 중에 피카소의 작품이 3편이 올라있으니 “미술은 돈이다”라는 말도 일리 있는 답이다. 피카소가 말한 ‘미술이 돈’이라는 진정한 의미는 위대한 미술작품은 국경과 인종, 문화를 초월한 감동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에게 물었다. “예술은 무엇입니까”. 백남준 선생이 말했다. “예술은 사기입니다.” 예술은 고정관념의 울타리에 갇혀있는 사람,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사기처럼 보인다. 백남준 선생의 작품 ‘부처’는 TV를 시청하고 있는 부처의 모습이다. TV위에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촬영-송출- 시청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작품은 불교의 ‘윤회’와 니체의 ’영겁회귀‘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의 창의성 밑바탕에는 한국 사람의 융통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몰입과 놀이 몰입, ‘일을 놀이처럼 즐겨라’라는 말은 과거 창의포럼에서도 많이 등장한 이야기지만 이주헌 관장은 예술의 관점에서 색다른 접근을 했다. 예술에서 몰입은 나를 잊는 무아지경의 경지라 설명했다. 나를 잊는 것은 주위를 의식하는 강박을 벗어나서 나의 기원 'Origin'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나의 꿈, 나의 욕망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몰입을 잘하는 사람은 노는 사람이다. 한국 사람의 놀이감성을 잘 반영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몰입을 통한 예술적 창조는 놀이에 기반을 둘 때 더 폭발력을 지닌다. 아예 사무공간을 놀이터처럼 만들고 직원이 놀이처럼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회사도 있다. 제대로 노는 것은 실패를 즐기고, 그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한‧일 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 히딩크 감독을 인용했다. 자전거 안장과 핸들로 만든 피카소의 ‘황소머리’는 몰입을 통해 발견했고, 투우라는 피카소의 'Origin'으로 돌아가서 창조한 작품이라 했다. 피카소는 황소머리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안장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중고 자전거를 보는 순간 황소머리가 떠올랐다고 한다. 피카소는 말했다.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 파괴와 전복 창조를 위해서는 고정화하려는 의식을 틀을 깨야한다. 파괴의 결이 창조의 결이다. 마크 퀸의 ‘셀프’는 조각작품은 돌이나 쇠 같은 고체재료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전복시킨 작가 본인의 피, 액체로 만든 작품이다. 작품을 자화상이라 하지 않고 셀프라고 명명한 것도 자신의 피로 만들었기에 작품자체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만조니의 ‘세계의 대좌’는 조각을 올려놓는 받침대인 대좌를 땅위에 거꾸로 설치한 작품이다. 거꾸로 놓음으로써 대좌가 지구를 받치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파괴와 전복은 전통과 이념, 도그마에 대한 거부이자 도전이다. 획일화된 일상에 파괴와 전복이 없으면 창조는 생성되지 않는다. 이주헌 관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것이라고. “미술을 모른다고 감상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지성은 좌뇌의 영역이고 감상은 우뇌의 영역이다. 미술은 느낀 만큼 보이는 것이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느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예술가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감상자에게도 느껴보라고 하는 것이 그림이다.” 청명한 가을이다. 우리의 우뇌를 살찌우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미술관 나들이를 떠나보자.
창의포럼 박경철 원장의 창의의 조건(2013.10.16)
창의포럼 연사로 KIST를 방문한 적이 있는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그의 이름이 기억 속에서 아련해질 무렵 우리나라 지성인들이 좋아하는 고전 중 가장 많은 추천 받은 작품으로 다시 조르바를 접했다.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고 나는 자유의 표상인 조르바에 빠져들고 말았다. 박경철 원장을 문명의 배꼽 그리스로 인도한 것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했다. 의대생 시절 우연하게 그 소설을 읽으며 심장이 타오르는 듯한 일종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창조와 휴머니즘 박경철 원장은 창조는 하늘 아래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 정의하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은 육감(경험과 추리로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이용하여 변조, 개조, 제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성과 경험이라는 보편적인 컨센서스에 바탕을 두고 사유를 하기 때문에 신의 영역인 창조적 영감을 획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박경철 원장은 인간의 창조적 행위를 할 때는 영감이 필요하며, 그 영감은 광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성과 경험, 육감을 바탕으로 한 사유로는 절대 영감을 얻을 수 없고 그 틀을 넘어서는 광기가 있어야 영감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광기는 신에 의해 주어진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인 창조에 접근하려는 행위는 신을 숭배하면서도 신에 대항해서 맞서려는 자유의지 즉 휴머니즘이라 했다. 철학적 광기, 종교적 광기 박경철 원장은 광기는 영어로 Crazy와 Madness가 표현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광기는 Madness로 그냥 미친 것이 아니라 경험과 이성의 합리적인 판단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하며 광기의 종류에는 철학적 광기, 종교적 광기, 예술적 광기가 있다고 했다. 철학적 광기는 생각으로 미치는 것으로 사유의 한계에 저항하며 그 벽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이라 했다. 수십 년간 없음(無)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사유하는 스님들의 예를 들면서 그런 철학적 광기를 통해 생각의 경계를 넘어서면 이른바 ‘깨쳤다’에 이른다고 했다. 한 영역에서 사유에 영역을 확장하면 다른 영역의 이치까지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깨침의 철학적 광기는 타인과 공유가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종교적 광기는 믿음의 광기이다. 믿음의 광기는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이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하는 것이라 했다. 순교자들이 고문을 견디며 목숨을 내놓는 것처럼 믿음의 힘은 어떤 시련과 실패가 있어도 견디는 힘이다. 예술적 광기 박경철 원장은 예술적 광기에서 가장 많은 강연 시간을 할애했다. 예술가의 광기는 타고 나는 것이라 했다. 예술적 광기가 없는 사람이 학습을 통해 기교만 배워서 예술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했다. 꿈은 인간이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인데, 예술가는 그 자유인 꿈을 현실화 시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성과 경험의 포로인 일반인에게는 현실과 꿈이 정확히 구분되지만 예술적 광기를 지닌 사람은 꿈도 현실일 수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도 모든 갈등이 치유되는 평화로운 낙원세계를 꿈에서 경험한 후 작곡한 작품이라 했다. 예술가의 광기는 현실세계와 영감의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예술적 광기의 결과물인 시와, 음악, 미술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영감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박경철 원장은 예술을 늘 가까이 하라는 말과 함께 영감을 체득할 수 있는 감상법을 제시했다. 쇼핑하듯 스쳐가는 미술관 투어가 아니라 잭슨 폴락의 낙서처럼 보이는 작품을 2시간 이상 몰입하면서 감상할 때 작가의 예술적 광기를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절대자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인 휴머니즘도 결국 인간 본성인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다. 박경철 원장이 말하는 광기도 이성과 경험이라는 지식인의 저울로부터 탈피하려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단풍이 짙어지는 가을에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야겠다. 나는 자유다.